우리 회사에는 일을 열심히 한 조직원에게 하루의 휴가를 주는 제도가 있다. (업무를 잊고)멍때리며 떠나기. 규칙은 1.집에서 뒹굴거리기 금지. 2.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것. 3.다녀온 후 일기 쓰기
감사히도 날 보내주셔서 멍떠를 다녀왔다. 일기를 쓴 김에 여기도 남겨본다
피할 수 없는 운명
요즘 멀리 있는 글자가 안 보인다는 사실에 조금 침울해져있었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직무의 고질병이겠지요.
저는 눈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대학 시절엔 두꺼운 책들과, 직장인이 되고나서는 컴퓨터와 붙어있으니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하향하는 시력을 받아들곤 했습니다. 이번 멍떠는 멀리 있는 것들로 눈을 시원하게 해주기로 마음먹었으나.
월수금
저는 주 3회 아침수영을 하는데요. 요즘은 플립턴과 스타트 연습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크라우칭 스타트를 정복하기 위해 스탭 바이 스탭으로 배워가고 있는데요. 지금은 스타트대가 아닌 맨 땅에서 연습중입니다. 물을 무서워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중심을 잃고 머리부터 다이빙한다는 것이 본능적인 무서움에 발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선생님께서 잘 코치해주셔서 지금은 스스로 3번중에 한 번은 완벽한 스타트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작은 성취가 꽤나 즐거워서 수영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눈을 시원하게 해 주기로 마음먹었으나
비가 옵니다. 이맘때의 비는 농부에게 희소식이겠으나 끝내주는 야외활동을 계획한 저는 다시 가까운 것들을 봐야할 것 같습니다. 수영이 끝나고 회사에 들러 멍떠지원금을 받았습니다.
일단 보고싶었던 영화들 중 하나인 콘클라베를 보러 용산에 갔습니다.

개봉한지 꽤 오래되어 벌써 내려갈법 한 영화인데 교황이 주님 곁으로 떠나셔서 게으른 저까지 볼 수 있게 된 영화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시놉시스에 분류가 ‘스릴러’ 로 되어있어서 호기심을 자극하던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스릴러라고 부를만했습니다. 중반까지는 서스펜스같은 느낌도 주면서 반전도 충분히 신선하고 교훈까지 남겨주는, 고루 갖춘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보고 잠깐 수정..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개발일 또한 연탄나르기 같습니다. 뒷 사람이 아무리 빨리 연탄을 쌓고 싶어도 앞에서 연탄을 건네주지 않으면 빈 손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저는 가끔 까만연탄말고 흰 연탄을 건네는 실수를 하곤 하는데요. 뒷사람이 빈 손으로 서있으면 매우 미안하기 때문에 빠르게 수정하는 면목을 갖춰야 합니다.
계획 없는 하루
저는 완전 계획형 인간이라서, 머릿속에 저녁에 뭐 할지 다음날 뭐 할지 주말에 뭐 할지 생각 뿐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 계획도 생각도 없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밥 시간이 되어 지도를 켰습니다. 가보고 싶었지만 웨이팅이 극악무도했던 맛집을 검색해보니 대기 10팀. 이정도면 거저인데요. 바로 어플로 웨이팅을 걸고 용산역 안에 있는 영풍문고에 .. 가려고했으나 공사중이더라구요. 1층에 작게 팝업스토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매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는데요. 올해는 아직 읽지 못했기 때문에 구매하고자 했습니다.
젊은작가상을 읽는 이유는, 좋은 작품을 노력없이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책이고 영화고 흥미로워보이면 다 맛봤지만, 점점 작품이 주는 무게와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무야 미안해’ 책을 읽게되면 시간이 아깝기도 했고요. 젊작상을 선택하면 전문가들이 선별해낸 이야기들을 마음 놓고 즐기면 되는 것입니다. 이상문학상같이 권위있는 수상작들도 많지만 젊은작가상은 단편이고, 가벼워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쌤쌤쌤
저는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는데요. 라자냐도 두세번 만들어 지인과의 홈파티에서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박나래의 유튜브에서 쌤쌤쌤이 라자냐 맛집이라는 정보를 접했습니다. 맛집의 라자냐는 무슨맛일까? 몇 번 가려고 시도했으나.. 항상 웨이팅이 30~40팀정도 되어서 포기했었습니다. 오늘은 비오는 평일이라 그런지 기다릴 만 했습니다.


토마토를 주제로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가게는 인상적이었고, 혼자 방문했는데도 친절히 맞아주셔서 즐거운 식사가 되었습니다. 라자냐 한 접시에 21,000원으로 혼자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완전히 가능했습니다. 파스타 기준 1.5인분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거뜬하죠. 가격대가 좀 있다고 느낄 수 있는데 수제 라자냐의 가치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월계수와 허브향, 리치한 고기맛, 적당한 치즈의 풍미 이 모든 것을 섞어주는 토마토페이스트. 맛집 인정입니다. 바질은 4잎을 올려주는데 바질잎 추가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했을 것 같습니다. 생바질의 향이 너무 좋았거든요.

라자냐의 킥은 샐러리와 월계수라고 하는데 월계수는 충분히 즐겼으니 다음에는 샐러리를 넣은 라자냐를 만들어볼 것 같습니다.
흐르는 것
어느 카페를 갈까 골목을 걷다 활짝 열린 문으로 흘러나오는 재즈가 마음에 들어 들어왔습니다. APPLE TEA 라고 쓰여있는 메뉴를 시켰는데 히비스커스의 시원한 맛과 사과의 은은한 단맛이 잘 어우러지는 음료를 받았습니다. 세차게 내리는 비 보사노바 재즈 마음에 드는 소설 이게 행복일까? 감히 정의내려보고 싶습니다.

올해의 대상은 백온유 작가의 <반의반의 반> 입니다. 감탄을 하며 읽었습니다. 짜임새있는 삼베처럼 까끌거리는 소설이 오랜만이었고 스토리가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마음이 기우는 것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 거대한 물줄기를 막을 수 없듯 마음에 물길이 나면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들에게 책을 읽히고 토론배틀을 열고싶은 책이었습니다.
자 이제 시작이야
무엇인가를 혼자 하는 재미를 상기한것같아 기쁩니다. 늘 상대가 뭘 하고 싶은지 물었는데 오늘만큼은 내가 뭘 하고싶은지 생각해보며 주저없이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개발이란 것이 재미있으면서도 머리털이 뽑힐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다음 여정을 시작하기 전 쉬는 시간을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멍떠는 꼭 맑은 날에 떠나 야외활동을 수행해보고 싶습니다.
제 멍떠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 5월 16일 핑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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